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오자와 이치로 (문단 편집) === 민주당 여당 시기 행보 === [[파일:external/img.yonhapnews.co.kr/PYH2009121202690001300_P2.jpg]] 2009년 12월 방한하여 [[국민대학교]]에서 "새로운 한일관계와 그 역할을 담당할 리더의 육성"이라는 특강을 했다. 이 특강에서 "불행했던 시대 사죄한다"라는 발언을 하였다. 국민대 강연을 마치고 조선호텔에서 [[조훈현]] 九단을 만났다. [[바둑]] 아마 6단이라서 조훈현 九단과 넉점 깐 접바둑에서 이기고 친필 바둑판을 받았다. (아마도 조 9단이 봐줬을 것으로 추측된다.) 저녁에는 청와대로 가 이명박 대통령을 예방, 만찬을 가졌다. 하토야마가 총리에 오른 이후로는 [[섭정]]이라는 비야냥을 들을 정도로 영향력이 컸으며, 12월 방한에 앞서 같은 달에 있었던 중국 방문에서는 무려 세자리 수의 의원을 끌고 왔다. 그야말로 막후 실세. 그 직후 한국에 와서는 "사죄한다"라는 표현과 함께 [[천황]]의 방문을 제의하는 등의 발언을 보였다. 이 때문에 우익들에게는 매국노 취급을 받으며 신나게 까였다. [[2010년]] 중순, 또 다시 벌어진 정치자금 문제로 인해 간사장 자리에서 낙마하였다. 그런데 낙마한지 세 달도 채 못돼서, 하토야마가 사임한 자리에 총리 한번 해보겠다고 민주당 대표 선출 레이스에 기어나와 민주당 팀킬을 감행. 하지만 2010년 9월 14일 선거를 통해 300표라는 차이로 패배하고 [[간 나오토]] 총리가 재선에 성공했다. 오자와의 도덕성 문제가 얼마나 치명적이었냐면, 당 대표 선거 기간 중에 거의 모든 언론이 오자와에 대해 미심쩍은 눈길을 보냈으며, 좌우파를 막론하고 "민주당이 아무리 글러먹어도 오자와가 총리되면 그땐 정말 끝"이라는 모토로 깠다.[* 물론 그 와중에도 혹시나 몰라서 막판에 오자와를 지지한다고 돌아선 각료들도 있고, 그동안 심어놓은 자파 인사들이 많이 있긴 했지만. 이 사람이 외국인 참정권 운운하면서 리버럴해보이는 탈을 쓰고는 있지만, 실질적인 정치적 스탠스는 우파 쪽에 가깝다. 나쁘게 말하면, 우파와 좌파의 안 좋은 점은 다 모아놓은 인물.] 우스갯소리로 오자와가 총리가 되는건 [[엔화]] 가치는 떨어질테니 수출은 늘어나겠네 라고 할 정도로 비난에 비난이 겹쳤었다. 향후 민주당이 다시 정권을 잡을 희망이 상당히 희박해보이는 현재로서는 이 사람이 총리가 될 일은 사실상 물건너 간 것으로 판단 될 만한 결정적 패배였다. 결국 총리 선거 실패 후, [[불기소처분|불기소]] 처리된 정치문제가, 고등 법원의 판단으로 강제 기소. 이리되자 간 나오토 총리는 오자와의 당원권을 정지시키고 탈당하라고 압박하는 상황. 오자와도 이에 반발하면서 자파 의원들을 동원해 간 총리의 퇴진을 압박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오자와가 자파 의원들을 데리고 탈당해 신당을 차릴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이미 오자와 계파의 의원 16명이 원내교섭단체 등록을 마친 상황이었다. [[도호쿠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간 총리가 무능하다고 질타하면서 간 총리의 사퇴를 압박했지만 자민당과 공명당이 내각 불신임안을 제출하자 간 총리가 하토야마 전 총리에게 사정해서 자진 사퇴라는 명분을 얻고 내각 불신임안을 부결시켰다. 사실상 민주당 의원 대부분이 반대표를 던졌기 때문에 오자와 계파도 반대표를 던졌다고 볼수 있다. 그런데 내각 불신임안이 부결되자 마자 간 총리가 2012년 초에 물러나겠다고 말하자 하토야마 전 총리가 빡치면서 오자와 전 간사장측과 연대해 조기퇴진을 압박했고 결국 2011년 8월쯤에 간 총리가 사퇴하겠다는 말을 받은 상황. 이로 인해 후임 총리 인선 준비가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기묘하게도 일본에선 '''이제 오자와의 판이 도래했다'''라는 식의 분석이 나왔었다. 심지어 [[야후]] 재팬에서는 차기총리감 1위로 오자와가 지목되기도 하는 등 의외의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마지막 기회에도 불구하고 정치자금 문제라는 약점때문에 결국 본인이 직접 나서지는 못했다. 당초 오자와 계파와도 다리가 걸쳐있는 [[노다 요시히코]]를 지지하지 않을까 했지만 결국 [[가이에다 반리]] 산업장관을 내세우기로 하면서 민주당 대표선거는 다시금 오자와 대 반 오자와의 흐름으로 가게 되었다. 1차 투표에서 가이에다 반리가 1위, 노다 요시히코가 2위를 차지했지만 과반득표자가 없어 2차 결선투표를 치루게 되었는데 이때 '''반 오자와 세력이 결집해 노다를 밀면서''' 노다가 가이에다를 제치고 대표에 당선되었다. 가이에다를 통해 막후 실권자의 위치를 회복하려던 오자와는 영향력의 쇠퇴를 절감해야만 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